민생·공정경제

소비자권익 보호 정책

2018.10.10

조회수 95

(개요) 기업의 부당한 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피해구제 권리를 장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7.7월)

 

□ 관련 주요 정책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1) 소비자의 생명·신체 등에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물품의 경우 소비자원이 사업자에게 리콜을 권고할 수 있으며 이를 불이행하는 경우 공정위에 시정요청을 할 수 있는 근거 마련(’18.2월)

 

  2) 소비자 대상으로 종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피해구제 창구의 역할을 하는 소비자종합지원시스템 확대 개편(’18.5월)

 

  3) 소비자기본법 상 집단분쟁조정 신청의 개시기한을 정해 절차지연을 개선하고, 전화권유판매업자에 통화내용 보존의무를 부과하고 소비자 열람권을 보장(’18.5월)

  • [기고] 피해구제를 위한 똑똑한 선택, 집단 소송제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 출처 : 한국일보 (2018. 7. 18)
     

    폭풍우가 치더라도 우산 값이 갑자기 오른다면 사람들은 바가지를 씌운다고 생각하여 우산을 사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산 장수는 우산 값을 올리지 않는다. 또 3,000원짜리 머그잔을 공짜로 받은 사람에게 6,000원에 팔라고 하면, 의외로 팔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것이 된 머그잔이 시가의 2배 이상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야 하고, 물건을 2배 가격에 팔 수 있다면 파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실제 사람들은 그렇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작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의 관찰 또는 실험 결과이다.
     

    그는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은 허점투성이임을 전제로, 인간의 “똑똑한 선택”을 유도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공공정책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자가 “부드러운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부드러운 개입”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nudge)라고 불렸다.

    남성용 소변기 위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보다 소변기 안에 파리 사진을 붙여놓는 것이 ‘사회적 넛지’가 된다. 납세자에게 안내문을 보낼 때 “당신이 내는 세금은 당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줍니다”라고 쓰는 것보다 “이미 국민의 90% 이상이 납부하였습니다”라고 쓰는 것이 자진납세를 이끌어내는 데 효율적이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ㆍ연비조작ㆍ개인정보 유출ㆍ라돈 침대 등 다수가 피해를 입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그 피해 구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집단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선뜻 권리를 행사하기를 주저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소송제도 하에서는 개개인이 소송에 필요한 자금과 노력,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입증부족 등의 이유로 실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회복 전에 비용을 투입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더구나 비용이 실제 회복액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집단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개개인은 일단 현상을 유지하려 한다. 이런 선택은 사회적으로 피해를 방치하는 결과가 되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절차를 준수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할 사회적 유인을 약화시킨다.


    여기서 피해자들의 “똑똑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위의 이유로 권리 행사를 회피하지만 그렇다고 피해를 용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편, 피해자들 중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려는 소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만약 적극적인 일부가 전체를 위해서 권리를 주장하도록 하고, 나중에 배상이 현실화 되었을 때 전체 피해자들이 비용을 분담하도록 한다면 권리행사 회피 유인은 약화될 것이다.


    집단소송제는 스스로 나서는 것은 주저하지만 구제 받기를 희망하는 다수 피해자의 심리를 반영한다. 피해자 일부가 대표로 제기한 소송으로 전체 피해자가 함께 구제 받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이를 원치 않는 피해자들이 자신은 제외할 것을 선택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모든 피해자 각자가 실제 의도한 대로 결과를 얻고, 사회적으로도 집단적 손실에 상응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 가해자의 책임을 현실화하여 법과 절차를 충실히 지켜야 할 유인을 발동시킬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가해자도 끊임없이 책임을 추궁 당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집단적 피해를 일으키는 위법행위에 맞서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가치가 모두 실현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법무부는 올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을 개정하여 여러 분야에 집단소송제를 확대하려고 한다. 집단소송제가 집단적 피해에 대한 경제정의와 사회 안전을 이루기 위한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사회적 넛지’로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 [기고]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해도 소송남발 걱정 없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출처 : 동아일보 (2018. 8. 23) 

    최근 여론의 주목을 받는 BMW자동차 화재 사건을 보면, 우리 국민은 세계적 ‘호갱’이 된 것 같다. 법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소비자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운전하면서 오직 자동차 회사의 점검 서비스를 기다리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당장은 화재의 원인을 밝히고 생명과 재산 피해를 중단시키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재발 방지가 기본이다. 그런데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2015년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밝혀졌을 때, 미국과 캐나다 소비자들은 1인당 최대 1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고, 회사가 지급한 피해보상액은 총 17조 원을 넘었다.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고작 100만 원 상당의 자동차 수리 쿠폰에 감사해야 했다. ‘죽음의 에어백’이라 불리던 다카타 에어백 결함 사건 때도 미국에서는 집단소송 결과 대부분의 자동차회사가 수천억 원씩 보상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비자가 그런 보상금을 받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상상력 풍부한 작가들은 악덕 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극적으로 이기는 과정을 잘 그린다. 존 그리셤의 소설을 영화화한 1997년 작품 ‘레인메이커’는 백혈병 환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악의적으로 거부하는 거대 보험회사를, 2000년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환경오염으로 암과 백혈병을 유발시키고도 은폐한 대기업 공장을 상대로 벌인 힘없는 피해자들의 법정 투쟁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작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었다면 이런 작품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제도는 기업이 악의적(willful or malicious)이고 반사회적인 불법 행위를 했을 때 적용된다. 기본적인 기업윤리와 책임감을 갖춘 기업들은 염려할 이유가 없다. 자칫 피해액의 몇 배에 달하는 배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결함 없는 자동차를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효과이다. 이런 훈련을 거친 기업이 국제경쟁력도 갖추게 된다.


    반면 악의적인 불법 행위가 오히려 이익이 된다면 기업들이 잘못된 행태를 고칠 이유가 없다. 유명한 미국의 1994년 맥도널드 커피 사건은 피해 할머니가 받은 46만 달러의 배상금이 과도하다는 시비로 제도 개혁 논의를 불러일으켰지만, 이 소송을 통해 비로소 이전 10년간 700건이 넘는 비슷한 화상 사고가 있었는데도 맥도널드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사건 이후에야 3억 미국인이 이용하는 커피 컵의 디자인을 개선하고 경고 문구를 써넣는 등 화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2011년 방송된 ‘뜨거운 커피’라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당시 사건 경위가 대기업과 언론에 의해 많이 과장·왜곡되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 제도에 염려스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이에 대한 대비가 이미 넘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맥도널드 커피 사건과 같은 ‘횡재’를 노린 소송 남발에 대한 우려가 큰 것 같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손해액 인정에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한 우리 법원이 3배를 배상하도록 해봐야 일반인 상식을 기준으로 하면 실제 피해액에나 겨우 미칠 정도라는 것이 다수 법학자의 생각이다. 이 정도를 얻자고 개인 소비자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첨단기술과 대형 로펌으로 무장한 대기업을 상대로 기술적 결함과 악의를 문제 삼는 소송을 남발한다는 시나리오는 기우에 가깝다.
     
     

    현재 제조물책임법 등 일부 법률에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장식에 불과하다.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도 않은 부작용을 너무 걱정해서 손발을 다 묶었기 때문이다. 제조물책임법에서 재산상 손해를 빼버려 사람이 죽거나 다쳐야 비로소 소송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나, 한 세트로 작동해야 할 집단소송제도와 ‘디스커버리제도’(재판 개시 전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제도)를 배제해 개인 소비자가 제 풀에 주저앉게 한 것은 지나치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발생한 수천 명의 영유아 피해에도 어찌 하지 못했는데, 자동차 화재야 별것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초적 책무이다. 출근길 운전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도록,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작동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기를 소망한다. 
      

     

  • [한경에세이] 다수 소비자를 위한 집단소송제


    박상기 법무부 장관      * 출처 : 한국경제신문 (2018. 9. 13)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연비표시 조작, 가상통화취급업소 개인정보 유출, 라돈침대 파문에 이어 최근 BMW 차량 화재 등 집단적 피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고에도 소비자들이 개인적으로 소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손해를 배상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가 다수인 상황에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는 방법이다. 즉 피해자 중 일부가 전체를 위해 소를 제기하고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집단소송제는 다수가 비용, 시간, 절차의 복잡성 등으로 인해 피해 회복을 포기하는 것을 방지하는 법적 장치로서 기능한다. 나아가 기업으로 하여금 평상시 피해를 방지하도록 하고 사후 회복에 적극적으로 응하도록 할 유인책으로 작용한다. 

    일각에서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남소(소송 남용)에 따라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남소에는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별다른 제약 없이 제기되는 공동소송이 더 문제될 수 있다. 집단소송제는 소송허가 요건을 엄격히 하고, 비용 선납을 요구해 남소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단일한 절차에서 효율적인 분쟁해결을 가능하게 한다.

    집단소송제 도입은 행정력에 의한 사전규제 시스템을 사후구제 강화로 전환한다. 이는 기업활동의 폭을 넓히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기업을 각성시켜 슘페터가 우려한 ‘반기업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혁신적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폭스바겐은 연비표시 조작으로 미국에서는 소비자 1인당 1100만원을 배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 1인당 100만원 상당의 쿠폰만 제공했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더불어 집단소송제가 완비된 미국과 그렇지 못한 한국의 차이다.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이 강력한 미국에서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등 기업의 혁신성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기업의 소비자 보호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힘없는 다수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기업의 준법경영을 유도하고 혁신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이끄는 길이 되는 것이다.


    집단소송제 도입은 사회적 신뢰를 높여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한다. 또 사회 갈등을 해소해 혁신과 성장을 향한 도약의 디딤돌을 놓는 것과 같다.

     

     

  • [사설] BMW 화재사태,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드시 관철해야


    * 출처 : 한국일보 (2018. 8. 13)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3일 국회에서 김정렬 국토교통부 제2차관,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 등과 ‘BMW 화재사고’ 긴급간담회를 열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과징금 부과 등의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토부도 BMW 전담 TF팀을 별도로 꾸리기로 했다. 김 회장은 “연이은 화재사고에 대해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머리를 숙였으나, 이 정도로 얼렁뚱땅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BMW는 여전히 화재 원인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고 대책도 수립하지 못했다. 따라서 혹시라도 아우디ㆍ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때처럼 소프트웨어 조작이 있었는지, BMW가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한다.

    더욱이 그동안 국토부가 늑장 대응을 해온 것에 대해서도 고의성이 있었는지, BMW와 유착관계는 없었는지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한다. BMW 고객의 불안감과 운행 중단 등의 불편을 완벽하게 해소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부 아파트 단지 주차장 등에서는 BMW 차량을 격리해서 주차시킬 정도로 주민 불안도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기회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디젤 게이트’ 때도 국회와 국토부가 도입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으나 이유 없이 흐지부지됐다. 참여연대 등에서 주장하는 집단소송제 도입도 함께 검토해 국내 소비자들을 ‘호구’로 전락시키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징벌적 손해배상제 감성적 접근보다는 충분한 논의 선행돼야


    정진수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 출처 : 매일경제신문 (2018. 9. 9)

    BMW 차량 화재 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고의적·악의적 불법 행위에 대해 실제 피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BMW 측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하는 이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강력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일 "자동차관리법과 관련해 5~10배의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논의의 물꼬를 텄다.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외국 제도를 국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변용은 피할 수 없다. 국민 생명과 안전, 재산 등 기존 손해배상제도가 충분히 살피지 못한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 [매경 명예 기자 리포트] 배째라식 버티기엔 엄벌…기업 위축시켜선 안돼


    정진수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 출처 : 매일경제신문 (2018. 9. 19)

    여야 정치권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개선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우선 징벌적 배상책임을 산업 전반으로 확대할지 아니면 최근 문제가 된 자동차 등 특정 분야에 선별적으로 도입할지부터 입장이 엇갈린다. 배상 규모에 대해서는 같은 당 의원 간에도 의견이 다양하다.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폭스바겐 사태 때도 여야는 큰 틀에서 "징벌적 배상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그 적용 범위와 배상 규모를 두고 의견 조율에 실패했다. 2017년 제조물 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생명·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에 한해 최대 3배까지만 배상받을 수 있게 했다. 이번 BMW 화재 사건처럼 소비자들이 입은 `재산상 피해`는 적용받을 수 없다. 당시에도 재산상 피해까지 포함한 법안이 있었지만 처리되지 못하고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야당에서 제도 도입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각론에서 부딪힐 가능성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제조물 책임법`을 개정해 전 산업에 걸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배상 규모도 현재 3배에서 5~10배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한국당 등은 문제가 된 자동차 등 시급한 분야부터 선별적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9월 정기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국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적극론`과 `신중론`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입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입 적극론
    韓손해배상 美의 20분의1 그쳐…피해액의 5배 이상 늘려야 효과


    2015년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태로 미국에서만 17조2000억원(약 153억3300만달러)을 배상했다. 소비자들과 자발적으로 합의한 결과였다. 미국 구매자들은 차량 환불·수리와 관계없이 1인당 최대 1100만원을 배상받았다. 반면 같은 사안에 대해 국내 소비자들이 받은 건 100만원짜리 쿠폰뿐이었다. 이에 일부 차주들이 폭스바겐을 상대로 소송을 내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계류된 사건만 70여 건에 달한다. 배상도 제대로 못 받고 시간·비용과 수고만 들이고 있는 셈이다.

    ◆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 봉쇄

    폭스바겐이 같은 사안에 대해 한국과 미국에서 대응을 달리한 이유는 미국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피해 금액의 최대 수십 배를 배상하게 한다. 소송에서 질 경우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가래`(징벌적 손해배상) 대신 `호미`(자발적 배상 합의)를 선택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선 피해자들이 소송에서 이겨도 손해배상 금액이 적다. 승소 가능성도 낮다. 기업들이 "차라리 소송하겠다"고 버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이유로 "기업의 불법행위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전면 도입 말고는 해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불법행위에 대해 거액의 배상 책임을 규정해 놓으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기업들의 생산품 결함을 엄격하게 관리·감독하게 강제할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재 `제조물책임법` 등 일부 법률에 국한된 징벌적 배상제를 전면 도입하고, 최대 3배인 배상 책임을 크게 높이자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한 법학 교수는 "옥시가 한국에서만 유해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고, 폭스바겐이 미국과 달리 허술한 리콜 계획서를 내고 소비자들을 우롱한 것은 우리 손해배상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실질적 손해 보전 가능

    생명과 안전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손해를 제대로 보전해 줄 수 있다는 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의 근거다. 국내법은 실제 발생한 물질적 손해만큼만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전보 배상주의`를 취한다. 승소하더라도 계량화하기 어려운 손해 비용 등이 반영되기 어렵다.

    그마저도 피해자 스스로 `얼마나 손해를 입었는지` 입증할 수 없다면 배상받지 못한다. 실제 소비자들은 법정에서 △제품 결함의 존재 △기업의 고의·과실 △결함과 손해의 인과관계 등을 밝혀야 한다. 전문적·기술적 지식이 필요할 뿐 아니라 대부분 기업의 내부자료가 필요하지만 얻기 어렵다. 특히 국내에선 소송 상대방이 보유한 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영미식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가 없어 개인의 입증 부담이 지나치다.


    소송을 통해 받는 `위자료` 역시 너무 깐깐하게 매겨진다는 게 학계·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법원은 이를 해결하려고 2016년 위자료 산정 기준을 상향했다. 예컨대 대형 재난사고는 기본 최대 2억원, 고의적 범행 등 사정이 있으면 6억원까지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청해진해운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인정된 사망 위자료는 기준치인 2억원에 불과했다. 법원 스스로 여전히 과거의 실무 기준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일부 도입해선 효과 작아

    이미 한국에도 `하도급법` `제조물책임법` 등 일부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돼 있지만 활용도가 크진 않다. 배상 책임이 `피해액의 3배`까지로 제한돼 있어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송에 드는 막대한 비용·시간에 비춰 제대로 배상을 받기 어려워 제풀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하도급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지 6년이 넘었지만 적용 사례는 한 자릿수에 그친다. 까다로운 적용 요건도 제도의 활용을 막고 있다. 제조물책임법은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에만 징벌적 배상제를 허용한다. 이번 BMW 사태처럼 재산상 손해만 발생한 경우에는 적용받지 못하는 셈이다.


    한 집단소송 전문 변호사는 "우리 손해배상액은 미국에 비해 평균 20분의 1, 적게는 100분의 1 수준이라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돼도 기업에 큰 부담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오히려 적절한 피해자 배상과 기업의 도덕성을 높이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입 신중론
    줄소송 따른 경제위축 우려­…민형사 `이중처벌` 문제도


    삼양라면은 1989년 "공업용 쇠고기 기름(우지)을 사용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사실 이 의혹은 고기 외 내장이나 사골은 공업용으로 구분하는 미국 기준을 따랐다가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삼양라면은 8년간의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이미 경쟁 업체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긴 뒤였다. 소송 자체로 매출과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 국민 절반 "배상책임 2~3배 적당"

    이 사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일확천금을 노린 무리한 `기획 소송`이 기업의 명운을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할 순 없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기업의 불법행위만 없었다면 큰 문제 있겠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기업인들은 "소송이 제기되는 것만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고 우려한다.

    특히 한번 잘못되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곧바로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이광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46·사법연수원 28기)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손해액 산정 기준이 축적, 정립되어 있지 않고 기업들이 이 같은 우발적인 피해를 회피(헤지)할 수 있는 보험-재보험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징벌적 배상제의 전면적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10일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결과 응답자의 45.3%는 피해액의 2~3배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절반 가까운 국민이 수십 배에 달하는 과도한 배상책임은 지나치다는 의견인 셈이다.

    ◆ 한국은 행정 처분도 부과

    형사처벌 사안을 또 민사적으로 처벌하는 `이중 처벌` 문제도 우려된다. 정부가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은 물론 과징금 등 행정 처분을 부과하는 상황에서 민사소송에서도 징벌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뜻이다. 예컨대 하도급법에서는 하도급 대금의 두 배까지 과징금을 물고, 신용정보법에서는 금융위원회가 매출의 100분의 3 이하에 해당하는 금액을 50억원 한도 내 과징금을 부과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전면 도입한 영미권의 경우 `과징금`과 같은 행정 제재금이 없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그 역할이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에서도 법 적용에 엄격한 제한이 가해지는 추세다. 미국에선 위헌성 및 적용 축소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배상액을 정할 때 형사처벌 수위도 적극 고려하도록 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아예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동시에 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영국이나 미국과는 다르게 한국은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을 통한 과징금 등이 강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정착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판사마다 다른 배상기준·로펌만 이득

    법원 안팎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산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이는 재판의 공정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별 사건을 맡은 판사마다 배상액이 차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당사자들이 손해배상을 크게 인정하는 판사를 찾아 소송을 내는 `재판부 쇼핑`이 벌어질 공산도 적지 않다. 한 중견 법관은 "미국이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배상액까지 정하는 `민사배심제`를 실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일선 판사들이 고액의 징벌 배상 판결을 하기 때문에 법원·판사에 대한 비난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소 남발이 대형 로펌만 배 불릴 것이란 관측도 있다. 변호사들 입장에선 개별 사건의 배상액이 커질수록 이득이 커지기 때문에 기업의 고의·과실 유무와 관계없이 소비자들을 설득해 소송부터 내고 보는 경향이 심해질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최근 배상액을 실제 피해액의 3배 이내로 축소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실제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한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피해액의 56배인 1억4500만달러가 배상액으로 인정됐지만, 대법원이 "피해액의 10배 이내로 다시 판결하라"며 파기환송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일부 주(州)에서는 배상액의 일부를 공익기금에 적립하게 하고 있고, 법원도 엄청난 배상 판결은 자제하고 있다.

    집단소송제의 명암
    일부 소비자 소송이기면 소송 안한 피해자도 배상
    집단소송 도입한 미국 등 소송 남발 부작용 시달려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와 함께 `집단소송제도`도 도입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피해를 입은 여러 소비자 중 일부가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게 하자는 뜻이다.

    두 제도는 대표적 소비자 권리구제 수단이다. 미국, 영국 등 영미법 국가에선 보통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함께 도입돼 있다. 집단소송제 도입 역시 문재인정부의 대선 공약이고,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는 2018년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도 집단소송제 관련 법안 총 9건이 계류 중이다.


    집단소송이란 기업의 불법행위 등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 중 일부가 전체를 대표해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 효력이 피해자 전체에 미치게 하는 집단구제(일괄구제) 제도다. 최근 BMW·대진침대 등에 대해 제기된 소비자 소송은 참가자가 많다는 점에서 흔히 `집단소송`으로 불리지만 엄밀한 의미의 집단소송제와는 거리가 멀다. 재판에 참가한 자만 배상받을 수 있고 다른 피해자들은 다시 소송을 내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05년 증권 분야에만 집단소송제를 도입한 상태다. 하지만 소송을 진행하는 단계에서부터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요건이 엄격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첫 도입 이후 13년간 제기된 소송이 10여 건에 불과하고, 그나마 소송 허가 결정을 받은 건은 3건에 그친다. `다수 피해의 효율적 구제`란 당초 입법 취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고 법원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개별 소비자는 비용 부담과 복잡한 절차로 중도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 같은 사안에 대해 별개의 유사 소송이 여러 건 중복된다. 반면 집단소송은 일부 참가자가 승소하면 나머지 소비자들도 배상받을 수 있어 한 번에 소송을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무분별한 집단소송으로 기업 부담이 커지고 멀쩡한 기업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소비자 구제보다는 소송을 통해 돈을 벌려는 변호사들이 제도를 남용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집단소송제를 전면 도입한 미국 내에서도 문제로 지적된다. 또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현재처럼 개별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모여 공동 소송을 내는 것으로도 집단소송과 같은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BMW 사태에서 차주들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소송 참가자를 모집하는 게 그 예다. 특히 참여자 규모가 크면 일인당 부담하는 변호사 비용 역시 싸진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