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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초저금리 시대, 제도 보완 논의할 때다
- 하준경 위원 -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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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시대, 제도 보완 논의할 때다[동아광장/하준경]    원문보기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출처 : 동아일보(2020. 12. 21)


한국어 문법은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구별한다. 비가 ‘온다’와 ‘오겠다’는 각각 다른 시점을 가리킨다. 영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등도 우리처럼 현재와 미래를 뚜렷이 구별한다. 그러나 미래 시제(時制)가 없는 언어들도 많다. 현재형을 쓰면서 ‘내일’ 비가 온다는 식으로 미래를 지칭하는 언어들이 있다.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이 그렇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키스 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와 미래를 덜 구분하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일수록 주관적 할인율, 또는 마음속 적정 금리가 낮다. 이들은 지금 돈을 쓰나 나중에 쓰나 차이가 작다고 생각하므로 현재의 소비를 포기(즉 저축)할 때 낮은 금리로도 만족한다. 반대로 현재와 미래를 강하게 구분하는 사람들은 당장의 즐거움을 포기할 때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뭐든지 빨라야 하는, 현재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속 적정 금리는 높은 편이다. 고도성장 경험이 내면화돼 더 그럴 것이다. 이 주관적 금리는 객관적 시장 여건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금리와 꼭 같지는 않다. 현실의 시장금리가 마음속 금리보다 낮아지면 돈을 빌리려는 이들이 늘어난다. 가계대출 금리가 3%대로 떨어졌을 때는 경제학자 지인들까지 “이렇게 금리가 싼데 대출받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2%대 금리가 나오자 이들은 대출을 받아 자산을 사거나 돈을 쟁여두게 됐다.


이런 움직임이 실물 투자로 이어져 경제가 좋아진다면 금리가 정상화되면서 불균형은 줄 것이다. 그러나 금리가 제로 근처에 오래 머물면 경제가 저금리 저성장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부실기업이 좀비기업이 돼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막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대기업은 저금리를 활용해 독과점 장벽을 높인다. 집값이 소득에 비해 너무 비싸지고 가계부채가 부풀면 젊은이들의 목표저축액이 커지고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 소비가 줄고 출산율도 떨어진다. 실물과 자산이 괴리되고 자산 있는 이들과 없는 이들 사이의 격차는 커진다. 금리의 가격 기능이 약해지며 금융이 부실해지고 돈이 곳곳에 고여 흐르지 않는다. 고금리에 익숙한 한국은 이런 위험에 더 취약하다.


코로나 때문에 시간이 멈췄다면 현재와 미래가 구분되지 않는 셈이니 일정 기간 초저금리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대면활동이 멈춰도 사람들은 계속 밥을 먹고 돈 불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초저금리로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먼 미래의 기대수익까지 현재로 끌어와 자산가격을 높인다. 미국 중앙은행이 제로금리를 상당 기간 지속한다고 하니 앞으로도 자산시장, 특히 부동산시장이 혼란할 수 있는 환경이다. 자칫 거품 누적과 자산 불평등의 파국으로 갈지도 모른다. 고금리 시대에 설계된 한국의 제도가 초저금리를 감당할 수 있는지 점검하고 보완책을 마련할 때다.


우선 통화금융 정책의 틀, 특히 금리와 유동성 조절을 맡는 중앙은행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여건이 되는지 되돌아보자. 미국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기능을 대폭 강화해 초저금리 속에서도 가계부채를 하향 안정화시켰다. 한국은 한국은행법에 금융안정 조항을 넣긴 했지만 물가안정의 하위 목표 수준이고 돈의 흐름을 제어할 실질적 수단도 부족하다. 댐의 수문을 조절하는 사람이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실시간 파악이 어려운 상태에서 물길을 바꿀 수단도 없이 일하는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대출규제를 하지만 금융산업 육성과 금융 접근성을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유동성이 전국을 돌며 풍선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미리 막지 못한다.


금리를 낮춰도 금융 불안만 누적되는 초저금리 상황에선 돈의 흐름을 조절하는 신용 정책, 그리고 금융안정 정책이 더 중요해진다. 이 와중에 금융위와 한은은 지급결제시스템 운영 관리에 대한 권한을 놓고 대립했다. 권한과 책임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은에 개설된 계좌들을 중심으로, 한은 유동성에 기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지급결제시스템은 선진국들처럼 중앙은행이 온전히 책임지게 하는 것이 금융안정에 더 낫다. 차제에 통화금융 정책 전반에 걸쳐 목표와 수단, 권한과 책임이 조화되도록 제도를 정비하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정책 틀부터 제대로 갖춰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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