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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차이와 차별
- 이주희 위원 -

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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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차이와 차별    원문보기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출처 : 한겨레(2020. 12. 01)


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안이 다시 발의되었다. 아무리 선진국에서는 수십 년 전 이미 통과된 내용이라 해도, 국민의 대의기구에서 계속 통과시켜주지 않으니 이 역시 다수 국민의 대의를 반영한 현실의 한계일까.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법의 통과가 무의미할 수 있다고 계속 자위할 수도 있지만, 그 인식을 바꾸는 데 법이 기여할 수도 있다. 이번에도 헛된 기대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자신과 다른 무언가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차이가 단순한 거리감으로 남지 않고 경계심, 편견이나 적대감으로 발전해 합리적인 사유 없이 불이익을 주기 시작할 때 차별이 시작된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직접적인 차별적 처우를 넘어 이미 표면상 중립적인 관행과 제도의 차별적 효과에도 주목하는 간접 차별까지 시정 대상으로 본다.


간접 차별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미국의 ‘그리그스 대 듀크전력회사 소송’이었다. 이 회사는 외근직에서 내근 부서로 배치하는 조건으로 고등학교 졸업장과 두 표준화된 시험 결과를 요구했다. 문제는 1960년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경우 백인 남성의 30%가 고교 졸업장을 가졌던 반면, 흑인 남성은 12%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점이다. 두 시험을 통과한 백인은 58%였지만 흑인은 6%에 불과했다.


2020년의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매우 공정한 인사 정책이었겠으나, 1964년 시민권법 제정 이후에도 흑인 노동자의 종속적 지위를 영속화하는 인사 관행이 지속되었던 미국 사회는 이를 문제로 여겼다. 1971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항소법원의 판결을 깨고 그 졸업장과 시험 성적이 흑인에게 궁극적으로 불평등한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대법원이 회사가 차별적 의도 없이 단지 전체 노동력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했음 역시 인정했다는 점이다. 고용주가 해당 제도의 경영상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직무능력측정이 아니라 최소한도의 직무능력측정에 필요 불가결함을 증명해야만 했다. 연방대법원은 그 졸업장과 시험 성적이 직무역량이나 작업성과와의 관련성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의도적인 차별적 처우 없이도 조직 내 깊숙이 자리한 관행과 문화 자체가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이 판결은 이후 적극적 조치가 차별 시정의 도구가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혹은 불안정 노동자는 정규직과는 이미 서로 다른 신분이 되어 종사하는 조직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동등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사회적 약자는 시간과 자원의 부족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시정을 위한 정치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사회에서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를 보편적으로 인식시키는 조직 간 모방과 차별받고 배제되는 사람조차 그러한 구조와 밀착시켜 그 안에서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가게 하는 적응기제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차별금지법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기반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차별이 인간의 번영을 훼손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넘어, 실제로 어떤 차별로부터도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핵심적인 다수자 집단은 극히 소수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한 차원에서는 다수자 집단에 속하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소수자 집단에 속한다. 여성 정규직이라도 성별 위계에 의해 승진상 차별에 노출될 수 있다. 남성 비장애인이라도 성적 지향에 의해 배제되고 따돌림당할 수 있다.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이 이 법의 장점을 보지 못한다면 극소수의 기득권만을 지키기 위한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이다. 우리 입법부가 이번에는 좀 다른 판단을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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