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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의대 정원, 우리 모두의 문제다
- 하준경 위원 -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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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우리 모두의 문제다[동아광장/하준경]    원문보기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출처 : 동아일보(2020. 08. 31)


의사 수는 적어도 문제지만 아주 많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의료비를 내는 사람 따로 있고 의료서비스를 받는 사람 따로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진국 의료제도는 대개 노동인구가 건강보험료나 세금으로 큰 비용을 내고 은퇴계층이 혜택을 받는 식이다. 이때 의사가 너무 많으면 과잉진료를 권하기 쉬운데 환자 입장에선 남의 돈으로 서비스 받는 일이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노동인구의 부담이 과도해진다. 반대로 의사가 너무 적으면 지방에 살거나 인맥이 없는 이들은 의료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워 건강 불평등이 심화된다.


의대 정원은 적정 의사 수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바탕으로 20, 30년 후를 내다보고 결정해야 한다. 이 작업의 기초는 미래 소비자 수를 예측하는 것이다. 단, 단순 인구수가 아니라 의료서비스 이용도를 감안한 실수요자 수를 추정해야 한다. 특히 연령별 의료 수요가 중요하다. 통계청 국민이전계정 자료를 보면 2016년에 35세인 국민은 본인과 국가 부담금을 합해 1인당 142만 원을, 55세는 257만 원을, 75세는 508만 원을 의료비로 지출했다. 75세 1명은 35세 3.6명분의 의료 수요를 창출한다.


이 자료를 인구추계와 결합해 의료 실수요자 규모를 계산해 보면, 올해가 100이라면 2030년엔 118, 2045년엔 136으로 늘고 2060년엔 129로 진정된다. 현재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수도 같은 추세로 변한다. 즉, 2045년엔 의사에 대한 수요가 지금보다 36% 커지고, 2060년엔 29% 커진다. 소득 증가 등은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그럼 의사 공급은 어떤가. 2018년 말 의사면허등록자는 12만3106명, 은퇴자 등을 뺀 실제 활동 의사는 10만2471명이었다. 의대 정원 3058명이 유지된다면 신규 배출 의사 수는 매년 3000명 근처가 될 것이고, 전체 활동 의사 수는 당분간 실수요와 비슷한 추세로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은퇴자 수의 변화다. 의사가 70대에 은퇴한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10년 후부터는 은퇴 의사 수가 급증한다. 의대 정원 추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의예과 입학생 수는 1960년대엔 700∼800명, 70년대엔 1000∼2000명이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1981년에 3119명으로 급증한 후 1980, 90년대에 걸쳐 매년 3200∼3600명 수준을 유지했다. 이 ‘80, 90년대 학번’ 의사들이 70대가 돼 은퇴할 2030년대부터 2050년대까지는 신규 의사 대비 은퇴자 비율이 커 활동 의사 수가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1950∼70년대에 태어난 국민들이 본격 고령화돼 사상 최대의 의료 수요가 발생할 시점이다. 이때부터 1970년대생 대다수가 사망할 때까지 상당한 의사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


한국은 의료 접근성이 좋다고 하지만 어느 임계점이 지나면 의료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위고, 80세 이상 인구비율도 3%대로 30위인 ‘젊은’ 나라여서 인구 대비 의사 수가 31개국 중 30위여도 버티고 있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라 20년 후면 인구 중 65세 이상이 34%, 80세 이상이 10%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늙은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4명으로 한국의 2.4명보다 많지만 65세 이상 인구가 23%, 80세 이상이 7%인 초고령사회여서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기도 더 어려웠고 의사들은 누구를 포기할지 선택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우리 사회는 폭증할 의료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지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정 기간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면, 어떻게 얼마나 늘릴지 정부와 의료계뿐 아니라 수요자와 납세자도 함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에 공공의대를 만들지 서울 강남에 미용의대를 만들지, 기존 의대 정원을 어떻게 할지 등 여러 방안을 놓고 효과성을 검토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는 매년 급증해 8.1%로 이미 OECD 평균 8.8%에 근접했고 앞으로 더 늘 것이다. 의료비의 큰 부분을 부담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는 건강보험료가 잘 쓰일지 노후에 의료 서비스는 제대로 받게 될지 걱정하지 않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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