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원/전문가기고

※ 자문위원/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국민경제자문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부동산제도, 지속가능하게 바꾸자
- 하준경 위원 -

2020.07.06

조회수 80


부동산제도, 지속가능하게 바꾸자[동아광장/하준경]    원문보기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출처 : 동아일보(2020. 07. 06)


몇 년 전 대만인 친구가 자기 나라는 ‘헬 타이완’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집값이 너무 비싸 결혼도 못 하고 아기도 못 낳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만을 ‘귀도’, 즉 귀신 섬이라 부르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이런 얘기가 대만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서울, 홍콩, 베이징, 상하이, 호찌민도 집값 사정은 비슷하다. 집값이 가계 연소득의 3배를 넘으면 버겁다고 보는데, 이 도시들에선 이 비율이 10배, 20배에 달한다.


이들이 속한 유교문명권의 부동산 제도는 예로부터 ‘왕토사상’에 기반을 뒀다.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는 시경(詩經) 구절이 이를 잘 요약한다. 왕토사상은 가부장적 온정주의(paternalism)와도 통한다. 왕이 백성에게 땅을 나눠줘 모두 자영농이 되게 하는 것이 고전적 이상이다. 맹자는 변치 않는 재산(恒産)이 있어야 변치 않는 마음(恒心)이 생긴다고 했다. 토지 소유의 평등을 추구했던 정전제(井田制)나 균전제(均田制)가 이 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은 시장의 힘에 밀려나 점차 무력화되고 대토지 소유가 만연했던 것이 현실이다.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 동중서(董仲舒)는 “정전을 폐지하니 백성들은 이를 매매할 수 있어 부자의 밭은 천백 리를 이어지나 가난한 자는 송곳으로 찌를 땅도 없다”고 했다. 대토지 소유의 폐해가 심해지면 민란이 나거나 왕조가 몰락했고, 불평등이 완화되면 다시 집중이 심화되는 일이 되풀이됐다.


동아시아 나라들은 농지개혁으로 부의 평등을 이룬 후 고도 성장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효과가 한계에 달했다. 땅을 싸게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불평등이 되살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나눠준 것을 조금씩 환수하는 장치가 없으면 추가로 나눠줄 땅은 점차 고갈된다. 좋은 땅을 먼저 분양받은 이들은 유리한 위치에서 더 부유해지는데, 그 땅값이 소유자의 노력보다는 공공의 자원을 흡수한 것이어서 대중의 불만은 더 커진다. 집값이 비싸면 없는 집 젊은이들은 한 차례의 판단으로도 집값 향방에 따라 평생의 부가 좌우되는 도박판에 놓인 신세가 된다.


온정주의가 강한 나라들이나 사회주의 국가들에선 땅의 (실질적) 소유권을 지켜주고 그 가치를 높이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환수하는 장치, 즉 부동산 보유세가 없거나 매우 적다. 소유에 따르는 권리는 누리면서도 책임은 미미하니 국가가 개인이나 업자에게 징세권을 넘겨준 셈이 돼 그 시장가치가 상식을 넘는다. 반면 자본주의 선진국에선 재산권에 명확한 책임이 따른다. 미국은 보유세가 시가의 1∼4%에 달하고, 독일은 주택 관련 규제가 엄밀해 벽난로 하나 맘대로 못 없앤다.


부동산 제도가 지속가능하려면 땅 소유권의 범위와 한계, 그리고 공공의 권리가 명확히 정의되고 구분돼야 한다. 부동산 가치 중 개인이 기여한 부분은 개인이 갖고 공공이 기여한 부분은 공공이 환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유권을 보호하는 데 들어간 세금은 시가에 비례해 청구해야 한다. 비싼 집 소유자는 그 집을 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국가는 그 소유권을 지켜주는 데 매일 세금을 쓴다. 비용과 편익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최근 집값 때문에 젊은이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가 주택 특별공급을 확대한다고 한다. 당장 불만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집을 시가보다 싸게, 줄을 세워 나눠주는 것이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차제에 땅 소유권이 잘 순환할 수 있게 하는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고, 이를 새로 개발되는 곳에서부터 도입하자.


즉, 분양가를 충분히 저렴하게 하되 이 주택들에 대해서는 보유세를 시가의 1% 이상으로 선진화하자. 공공임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도 넉넉히 공급하되 임대료를 시세에 연동해 특혜가 과해지지 않게 하자. 초기 비용이 부담된다면 초저금리 환경이니만큼 채권을 발행해 충당하자. 주택금융 측면에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칙을 확립해 집값과 소득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되 과거가 아닌 미래 소득을 기준으로 삼아 젊은이를 우대하자. 아울러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교란행위를 막기 위한 감시장치를 적어도 금융감독 수준으로 확충하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