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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위험한가
- 정세은 위원 -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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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위험한가    원문보기


정세은 충남대 교수    * 출처 : 경향신문(2020. 05. 21)


2017년 현 정부 출범 당시 한국 경제는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부진할 뿐 아니라 생산인구 감소라는 공급 충격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되 국가채무 규모는 집권 말까지 GDP 대비 기준으로 소폭 증가하는 선에서 관리하겠다는 기조로 재정정책을 집행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이러한 계획에 차질을 야기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원래 전망을 밑돌 것은 확실하고 추경을 통해서는 지출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무엇보다 소폭의 추경을 뛰어넘어 현재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고용안전망 확보와 그린뉴딜-디지털뉴딜 추진이 필요하다. 내년 예산은 이를 반영하여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 다른 정부지출을 줄여, 즉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국채를 발행해야 할 것인가? 가령 과감한 적자재정을 시행해 국가채무가 단기간 50%대로 급증하게 되면 국가경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인가? 한편에선 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채무가 2017년 이미 GDP 110%에 이르렀던 점을 제기하며 현재보다 국가채무가 설령 두 배로 증가하더라도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단기간 급증은 위험하며 고령화 등 자연증가요인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단 노후소득보장 문제는 연금제도 개편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정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고령화 문제는 고려치 않도록 하자.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과감한 국채 발행 여부를 판단키 위해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재정정책 경험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국제 금융위기 직후 선진국들은 신흥국들의 동참 속에 과감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폈다. 2008년 OECD 평균 일반정부 국가채무는 GDP 대비 80%였는데 2009년에 90%가 될 정도였다. 이러한 국제공조를 통한 강력한 확장적 재정정책에 힘입어 경제는 V자형으로 회복했고, 위기를 극복했다고 생각한 선진국들은 당장 재정건전화에 나서야 한다고 입장을 선회하였다. 2009년 말 그리스가 숨겨온 대규모의 국가채무 정도가 밝혀지고 2010년 하버드대학의 라인하트와 로코프 교수가 국가채무가 GDP의 90%를 넘으면 경제성장이 급격히 둔화된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은 것이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재정건전화’ 분위기하에서 IMF, EU, ECB는 당시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긴축적인 재정정책을 처방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선진국 경제는 더블딥 상황에 빠지게 되었고, 2011년 OECD 평균 국가채무는 GDP 대비 100%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재정건전화 정책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고, 2013년에 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블랑샤르 박사가 경기침체기 재정건전화 정책을 펴는 것은 심각한 위축을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같은 해 미국 매사추세츠 암허스트대학교의 경제학자 세 명이 라인하트와 로코프의 논문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발견하고 실수를 수정한 결과 90%라는 기준이 의미 없다는 것과 국가채무와 경제성장의 관계는 국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는 사이 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채무는 2017년에 GDP 대비 110%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선진국들이 대규모의 재정을 투입하여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GDP 60% 혹은 90%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며 경제의 펀더멘털, 성장잠재력이 중요한 상황에서 경기침체기에는 확장적 재정정책의 성장효과가 더욱 크다는 암묵적 합의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코로나19가 야기한 경제위기 속에서의 재정정책은 단기적 국가채무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고용과 산업경쟁력, 경제성장잠재력의 동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국가채무가 증가하더라도 경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면 국가채무 증가를 오히려 좋은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마침 저금리 상황은 적자재정 정책의 비용도 크게 낮추어줄 것이다. 실제로 작년 국채 이자 비용은 GDP의 1.57%에 불과했다. 단기적으로 적극적 적자재정을 하자는 것이 무한정 국가채무를 증가시키자는 주장으로 읽혀서는 곤란하다. 고령화 대응과 마찬가지로 고용안전망의 확보는 장기적으로는 그에 걸맞은 재원마련방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시기에는 국채 증가가 더욱 바람직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국채발행을 주저하는 것은 정책 지형 변화를 읽지 못한 ‘낡은’ 방식의 방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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