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원/전문가기고

※ 자문위원/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국민경제자문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글로벌 투자자들도 비웃을 일
- 주상영 위원 -

2020.04.02

조회수 77


[세상읽기] 글로벌 투자자들도 비웃을 일    원문보기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 출처 : 한겨레(2020. 04. 02)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 것 같다.”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성격을 묻는 기자의 첫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으며, 카먼 라인하트 교수와 공동 집필한 저서 <이번엔 다르다>에서 금융위기 발생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집대성한 바 있다. 그런 그조차 이번 사태와 유사한 역사적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마치 외계인이 침공해서 모두들 집에서 숨어 지내는 것과 같은 형국이며 경제는 갑자기 멈춰 섰고 침체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의 진단도 비슷하다. 그는 1941년에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한 이래 미국이 가장 심각한 시련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경제가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의 침체로 빠지고 있다며, 이 상황을 혼수상태에 비유했다. 뉴욕대학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닥터 둠’이란 별명답게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올 거라며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를 우려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때 양적완화를 도입한 벤 버냉키의 평가는 그나마 덜 비관적이다. 마치 눈사태 같은 자연재해가 난 것이라서 생각보다 경기침체가 오래가지 않고 빠르게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맞아 우리는 물론 지구인 모두가 시험대에 올랐다. 가용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바이러스 전파를 억제하고 사회의 약한 부분을 보호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으며, 인간으로서 가진 능력, 열정, 의지를 시험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지금이 전쟁과 같은 상황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순서에 대해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확진자 파악과 치료,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 중앙은행의 신용 완화, 정부의 재정 투입이 대응책의 근간을 이룰 것이다.


다만 이같이 전시적 상황에서도 으레 등장하는 걱정과 우려는 재정건전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재정을 튼튼히 지키면서 전쟁에 이길 방법이 있을까? 로고프 교수는 1조달러(약 1230조원) 재정 투입 패키지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며, 순식간에 국가부채가 5조달러(약 6150조원) 늘어난다고 해도 별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지디피)이 대략 22조달러(약 2경7060조원)이기 때문에 이는 지디피의 20%가 넘는 액수이고, 최종적으로 의회가 승인한 액수인 2.2조달러(약 2705조원) 패키지만 해도 지디피 1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로고프는 서머스나 크루그먼과 같이 재정의 역할을 고집스럽게 주장해온 골수 케인스주의자가 아니다. 정부든 민간이든 과도한 빚이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온 대표적 경제학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저축을 하는 이유는 비가 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진짜 큰비가 내리면 수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가 여유 자금을 국채 매입이라는 형태로 정부에 빌려주면, 그것이 바로 국가채무다.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고 위기 극복에 쓰라고 정부에 빌려주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의 상징과도 같은 독일은 지난달 25일 700조원 규모의 대출 확대와 200조원이나 되는 재정지출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약 80조원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직접 현금 지원하는 데 쓰인다. 독일의 국가채무비율은 크게 올라갈 것이다.


사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여력 면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낫다. 지난해에 짠 확장성 예산과 긴급 추경으로 국가채무비율이 적잖게 올라갈 것이 분명하지만 현재 지디피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 정도이고, 한국은행의 양적완화 조치도 이제 첫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국제통화를 찍어내는 국가가 아니라서 방심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면 경기회복을 바라는 글로벌 투자자들마저 비웃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국가별 성적표가 나올 텐데, 필자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보고 싶다. 절대평가보다 상대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 성장 손실, 채무 증가 면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리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위기를 극복하길 기원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