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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슈퍼리치와 고통분담
- 정세은 위원 -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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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슈퍼리치와 고통분담    원문보기


정세은 충남대 교수    * 출처 : 경향시문(2020. 03. 25)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제 시야가 안갯속이다. 처음에는 국내 자영업 부문에서의 소비 위축 정도로 시작하더니 한두 달 남짓한 사이에 팬데믹이 선언되고 실물경제가 부품조달과 수출이 타격을 받더니 곧 전 세계 금융시장이 무너지는 극심한 위기로 전환되었다. 실물과 금융의 충격은 두 부문 간의 악순환을 작동시킴에 따라 향후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만일 이 사태가 몇 달 안에 잡히지 않고 연말까지 지속된다면 전 세계 경제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엔 미국을 위시로 한 선진국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신흥개도국들, 특히 중국을 끌어들여 G20을 출범시키고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실행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그러한 국제공조는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각국은 외려 서로를 공격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시스템이 그나마 잘 갖춰졌다는 선진국들에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향후 선진국들보다 의료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을 개도국에 본격적으로 코로나19가 전파되면 어떤 일이 전개될지 정말 알 수 없다.


한 달 전 칼럼을 쓸 때만 해도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두고 더 늘려야 한다는 여당의 주문에 재정건전성 때문에 더는 늘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던 기재부도 지난 한 달 사이에 여당과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여 100조원 규모의 금융대책을 발표하고 2차 추경도 고려하고 있으며 이후 필요하면 얼마든지 더 큰 규모의 대책을 낼 용의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사태 전개가 급박하다. 코로나19가 번진 선진국들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금 살포 정책을 선언한 것도 이러한 기조 전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현재까지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은 고려해야 할 여러 변수들을 놓고 보았을 때 방역과 의료에서의 대응과 마찬가지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큼 매우 잘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책이 향후에도 충분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저리의 자금을 융통해 주는 것으로서 야당이나 일부 보수적 인사들이 주장하는 대규모의 현금 살포라고 할 수 없다. 저리의 돈을 융통해줄 테니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버텨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길어지면 이러한 대책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임대료 등 고정비가 계속 나가는데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돈을 꿔서 버티는 것이 금방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고 폐업도 시간문제이다. 현재 임금체불이 늘고 있는데 얼마 후부터는 대량 실업, 폐업 사태가 급증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휴업수당, 고용유지지원금, 실업보험을 강화해야 하고 재난기본소득 혹은 재난수당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생계지원금을 주되 바람직하기는 피해 계층 어려움의 내용과 정도에 맞게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간 일자리안정자금 정책이 실시되면서 고용안전망 사각지대가 많이 해소되었지만 아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신종 플랫폼노동자들, 신용불량자들 등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계층이 여전히 적지 않게 존재한다. 따라서 선별적으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면 보편적으로 얇게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지만 선별하는 게 당장 어렵다면 일단 준보편적으로 생계비를 지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신 향후 생계지원이 오래 지속될 수도 있으므로 정교한 선별적 지원을 시행할 인프라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향후에도 지금까지처럼 정부가 잘 대응할 것이라 믿으면서 두 가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는 위기 대응이 새로운 거품을 야기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 부동산 가격 하락이 경제에 큰 충격을 가할 수 있으므로 부동산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바람을 넣는 무리가 있는데 지난 몇 년간 과도하게 부풀려진 부동산 거품은 이참에 빠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소수의 투기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부동산 규제 완화를 시행한다면 안될 일이다. 둘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조세부담률을 고려한다면 여유가 있는 계층이나 부문에 대해 조세정의, 국난극복 고통분담 차원에서의 증세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들이 경제위기를 틈타 감세를 요구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위이다.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금 모으기 대신 아직 여유 있는 고소득자, 고자산가들의 세부담을 올려 위기 대응 재원으로 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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