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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생충의 사회학
- 이주희 위원 -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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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세상] 기생충의 사회학    원문보기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출처 : 한겨레(2020. 03. 02)


영화는 한 시대의 지배적 사고와 이상, 불안과 야망을 반영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에 이어 아카데미까지 석권하면서 불평등이라는 인기 없는 주제는 이제 세계적인 문화 엘리트마저 외면하기 힘든 보편적인 화두가 되었다.


영화에서 박 사장은 자연스러운 우월함으로 반지하와 온지하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다. 그런 아비투스가 형성되기 위해 엄청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투여되었겠지만 마치 태생적인 미덕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여 다시 계급권력의 기반을 강화하는 것, 그것이 상류층 구별짓기의 핵심이다. 영화는 상층이 가진 것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또 하층이 굶주림을 탈출하기 위해 서로 싸우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준다. 부자와 빈자는 이제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서로의 삶을 모른다. 싸우는 사람들은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이는 없는 사람과 더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그 보이지 않는 견고한 선을 넘어 역겨운 가난과 노동의 냄새가 상류층에 전달되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붕괴되는 순간”,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완성된다.


불평등은 어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부모 덕이든, 더 많은 재능이나 노력 때문이든, 자유주의 담론에서 흔히 성취에 따른 적절한 보상으로 인정되는 이 거리와 차이는 결국 뒤처진 집단의 발전 가능성을 훼손하고 배제한다. 가장 근원적인 불평등은 생명 그 자체이다. 발전된 국가에서도 하층은 상층보다 10년 이상 더 빨리 죽는다. 교육을 덜 받은 사람도 교육을 더 받은 사람보다 빨리 죽는다. 우리 사회의 박 사장들은 백수이자 반지하에 거주하는 기택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


코로나19로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20여명의 아까운 생명을 잃었지만, 우리는 한해 동안 산업재해로 2천명이 넘는 노동자를 잃는 엄청난 산재 후진국이기도 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전 사회적인 관심하에 이전보다 확연히 개선된 정부의 방역과 대처 역량이 돋보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관심이 산재 예방에서는 발견되지 않을까? 계속해서 한달에 2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내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한 것과 유사한데 말이다.


코로나19와 산재가 사회에서 이처럼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명백하다. 바이러스는 부자가 포함된 불특정 다수를 감염시키지만 산재 사고는 영세, 중소, 하청 업체의 최하층 노동자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미국이 총기 소유나 도심지 내 흑인밀집지역 범죄를 방치하는 것과 유사한 이유이다. 만일 지금처럼 하층 유색인종이 또 다른 하층 유색인종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총기 범죄의 주된 대상에 백인 상류층이 포함되었더라면 미국 내 모든 정책 수단이 총동원되어 이를 막았을 것이다.


함께 배우지도, 함께 생활하지도 않는 부자와 빈자는 서로에게 무감각해지고 있다.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면 더 빨리 죽는가? 일하다가 사고로 불구가 될 만큼 다칠 수 있는가? 교육받은 부자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더 클 터이지만, 이미 안전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그들이 그 해결책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기생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가난한 자들의 불행이 나의 안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부자의 은밀한 공포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 공포감은 복지국가와 노동 기본권을 만들어낸 원동력이기도 했다. 부자가 싫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더 많은 박 사장들이 봉준호 감독처럼 훌륭하게 표준근로계약을 지켜야 한다. 더 많은 박 사장들이 하청업체에 위험한 업무를 위탁하여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대신 직접고용의 책무를 지고 산업 안전에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기생충>과 같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라면 산재 사망자의 수를 적어도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의 평균치에 이르도록 줄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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