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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본저축을 도입하자
- 주상영 위원 -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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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기본저축을 도입하자    원문보기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 출처 : 한겨레(2020. 03. 06)


코로나19 사태의 한가운데에서 지난해 출산율이 0.92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언론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이없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내려가는 경사마저 가팔라서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멈출지 아찔한 느낌이 든다.


현재의 낮은 출산율은 우리 사회경제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며, 획기적 대책 없이는 하락 추세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말해준다. 출산율 기사에는 항상 판에 박힌 해설이 뒤따르는데, 2006년에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계획이 수립된 이래 200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됐는데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가 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은 일·가정·교육의 균형에서 찾아야 하며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도 중요하다. 이렇게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다 자칫 긴장감이 떨어질 우려도 있다. 이제는 뭔가 특단의 추가 대책을 과감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록 늦게 도입되긴 했지만 보육료와 아동수당을 지급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 제도는 부부에게 출산 유인을 높이고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결혼 자체에 대한 유인을 주기엔 약하다. 특히 현재 젊은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하면 재력이 있어서 결혼한 사람들에게 주는 추가적 혜택일 수도 있다. 결혼 자체를 장려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단지 출산율이라는 수치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짝짓고 살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데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가칭 ‘기본저축’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부터 만 18살까지 매해 일정한 금액(예를 들어 100만원)을 국가가 입금해주는 기본저축 계좌를 개설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는 물론이고 본인도 꺼내 쓸 수 없고 19살이 되는 시점부터 본인만 인출할 수 있게 한다. 이자의 경우, 18살 시점까지는 국채수익률에 준하고, 이후부터는 물가상승률에 맞춰 재정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꺼내 쓰도록 유인한다.


결혼과 출산은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다. 일회성 출산장려금을 준다고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정도의 기초자금이 필요하다. 능력이 있는 부모조차 이를 원할 것이다.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를 잃은 아이도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동수당, 보육지원, 초중등 무상교육이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드는 비용을 덜어주는 것이라면, 이 제도는 개인의 자산 형성을 국가가 차근차근 돕는 방식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예비)부모의 입장에서도 안전판이 필요하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소득이나 자산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모든 계층에 출산 동기를 동등하게 부여할 수 있으며, 저소득층 자녀, 장애인, 고아 등 취약계층이 사회에 진출하고 자립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저축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소비를 장려하는 측면도 있다. 아동수당을 찔끔찔끔 올리는 것보다 저축을 병행하여 과감하게 지원하는 게 훨씬 미래지향적 대안이다.


물론 지루한 저축 과정을 다 생략하고 성인이 되는 시점에 3천만원 정도의 기본자산을 일괄 지급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낭비의 가능성도 있는데다 구속력 있는 제도로서 영구히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 기본계좌는 성인이 된 뒤에도 소멸시키지 않고 국가가 계속 관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일정 한도 내에서 개인이 추가 불입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본인의 교육, 주거, 결혼, 출산 용도로만 인출 가능하게 해야 한다. 금액이 넉넉할 수는 없겠지만 최후의 안전판 구실을 할 것이다.


이 제도에는 장점이 하나 더 있다.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 같지만, 금융위기나 디플레이션을 수반한 장기침체같이 큰 위기가 닥칠 경우에는 한국형 양적 완화의 통로로 활용될 수도 있다. 소위 ‘헬리콥터 머니’를 기본계좌로 손쉽게 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발동 요건과 규모를 사전에 까다롭게 규정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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