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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경제 역동성 살리려면 '혁신시스템의 실패'부터 바로잡아야"
- 이근 위원 -

2019.11.21

조회수 30

[청론직설] "경제 역동성 살리려면 '혁신시스템의 실패'부터 바로잡아야"    원문보기


 * 출처 :  서울경제(2019. 11. 21)


우리 주력산업은 일본 등 기술 선진국에 대한 벤치마킹과 추격을 통해 성장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섰다. 최근 10여년간 미래를 이끌 새 산업군은 생기지 않고 대신 후발국의 추격은 맹렬하다.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분과 의장인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추격연구소장을 맡으며 우리 경제와 산업의 현주소를 ‘추격’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분석해왔다. 최근에는 경제인들의 연구·논의집단인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회장에 취임했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규제 때문에 신산업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혁신 시스템의 실패’에 처해 있다”며 “경제의 역동성을 위해서도 정부가 이제 손을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재정을 써도 제대로 써야 한다.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도록 신성장 산업과 관련한 디지털 인프라에 돈을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추격의 관점에서 우리 경제를 진단한다면.  


△ 추격의 개념이 모방으로 많이 받아들여지는데 추격이론에서 추격은 격차를 좁히는 것을 뜻한다. 국가(선진·후진국) 간, 기업 간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 추격의 핵심은 ‘추격의 역설’이라고도 하는데 “추격만 해서는 추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추격은 선발자로부터 모방을 통해 배워 시작하지만 선발자와 다른 경제모델이나 다른 경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추격과 추월을 위한 기회의 창은 새 패러다임이 도래할 때 열린다. 새 패러다임 출현기에 선발자는 종종 기존 패러다임에 머물려 하고 선발자가 그 함정에 빠질 때 후발자는 새 패러다임을 먼저 택해 비약할 수 있다. 한국은 이렇게 일본을 추월했다. 디지털 기술이 출현했을 때 일본은 한국보다 10년을 지체했다. 한국이 새 패러다임을 먼저 택해 아날로그에 머무르는 선발자 함정에 빠진 일본을 제친 것이다.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선발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 하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도 선발자 함정에 빠져드는 것 같은데.


△ 선발자는 기존 기술의 강자이기 때문에 새 기술이 나올 때 이를 무시한다. 모토로라와 노키아 등 많은 선발자들이 알면서도 이 함정에 빠졌다. 우리나라도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주력산업에서는 중국 등으로부터 거센 추격을 받고 있고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는 이미 뒤처졌다. 그것이 수익성 저하로 나타나면서 주가는 몇 년째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주력산업의 현주소다.



- 말씀대로 산업 곳곳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것 같다.  


△ 한국이 일본을 추격할 때를 보면 정보기술(IT)처럼 사이클이 짧은 산업은 추격이 빨랐다. 중국도 이런 부분은 빨리 추격을 하고 있지만 사이클이 긴 소재·부품 등은 속도가 느리다. 한일 간 추격패턴이 한중 사이에도 비슷하게 그려진다. 한국을 아직 추격하는 산업도 있지만 전기차나 IT 서비스, 공유경제, 모바일, 핀테크 등의 신산업은 우리가 진입이 늦은 사이 중국이 추월해 선점했다. 자동차만 봐도 가솔린차는 한국과 격차가 있지만 중국은 이를 건너뛰어 바로 전기차로 갔고, 이제 한국보다 전기차 시장이 커졌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비약 전략’을 쓴 것이다.  



- 우리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는 어떤가.  


△ 반도체는 새로운 세대기준이 나오면 기존 칩은 시장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중국이 로엔드(저사양) 칩을 갖고 들어오는 전략을 쓸 수 없다. 중국도 그것을 알고 세대를 건너뛰는 비약 전략을 하려 한다. 위험이 크고 돈도 많이 들어 쉽지는 않다. 이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는 우위를 가질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이 틈새시장에 들어올 수는 있다. 주문형 반도체의 경우 지금은 경쟁자가 대만이지만 결국 중국이 될 것이다. 메모리보다 (추격) 속도가 빠르다.  



-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은 우리가 추격자가 아닌가.  


△ 부품·소재 산업의 특성상 추격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이 일본을 잡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이다. 추격이 더딘 참에 일본이 이번에 한국에 태클을 건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부품·소재는 한국이 오랜 기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추격해온 분야다. 우리가 이 기술과 시장을 잡으면 중국이 쉽게 따라오기 어렵다. (최근 펴낸 ‘2020 한국경제 대전망’에서도 강조했듯이) 정부가 소부장에 투입된 돈만큼 효과를 내려면 주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을 유연하게 해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 우리 산업 전반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 중국은 각 산업의 1등이 5년마다 바뀐다. 굉장히 다이내믹한 경제구조다. 반면 한국은 산업별 1등이 그대로다.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기업의 책임이 아니라 규제환경이 문제다. 새로운 기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 경제개발에 이용되는 모든 리소스(자원·재료 등)를 정부가 갖고 있다. 추격시대의 유산이다. 정부가 일정 부분 손을 놓아야 된다. 기득권처럼 돼 관료들이 손을 놓지 못한다. 이러니 기업들이 해외로 가는 것이다.  



- 규제를 어떻게 깰 수 있을까.  


△ 획기적으로 네거티브 선언을 했으면 좋겠다. 몇 개 열거한 것 빼고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보다 근본적 변화다. 쉽지 않은 과제인데 결국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해야 한다. 임기 초반 힘이 좋을 때 해야 하는데 후반기여서 늦은 감이 있다. 다만 경제가 좋지 않으니 도리어 이를 명분으로 도전에 나설 수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라도 규제를 깨자고 외쳐야 한다.



-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다른 필요한 전략은.  


△ 삼성의 초격차 전략처럼 투자를 한발 앞서 하는 것이다. 중국보다 더 빨리 달려가든지 아니면 새 분야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 신산업은 중국이 선점해 어렵지만 그래도 그들이 안 한 분야가 바이오다. 바이오는 한국이 기회를 잘 잡은 산업이다. 바이오 신약도 도전하지만 바이오시밀러를 먼저 키워야 한다. 시밀러는 한국이 처음 개발해 굉장히 유망하다. 성공 확률도 신약은 5%가 안 되는데 시밀러는 현재까지 100%다.  



- 4차 산업혁명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나.  


△ 틈새를 찾아야 한다. 넓게 봐서 4차 산업혁명 5대 기술(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3D프린팅, 빅데이터, 클라우드)에 들어 있지 않은 디지털 헬스 시스템 같은 것이 노릴 수 있는 분야다. 한국은 의료기술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 데이터베이스(DB)도 다 있다.  



-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규제에 막혀 잘 되지 못하는 것 같다.


△ 일반인의 4차 산업혁명 인지도는 높은데 규제장벽은 미국·중국·일본보다 심하다. 바이오처럼 성장하는 사업은 물론 4차 산업혁명 전반에 규제 완화가 필요한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과거에는 기술이 없어 인프라를 못 만들었는데 이제는 기술은 있는데 규제 때문에 못한다. 조지프 슘페터의 말대로 혁신 시스템의 실패다. 혁신과 관련한 제도와 주체 간 상호작용을 혁신 시스템이라 하는데 상호작용이 원만하지 않을 때를 시스템 실패라고 한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시장 실패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시스템 실패를 극복하려면 규제를 깨고 인재의 공급체계를 갖춰야 한다. 바이오 분야는 인재가 괜찮은데 빅데이터나 AI 쪽은 인재를 만들 전공 시스템이 경직돼 있다. 서울대에서 정원수를 조정하려면 교육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느냐.



- 국가 정책이 인재 공급의 물꼬를 도리어 끊는 것은 아닌가.  


△ 원전만 해도 현재 원전이라도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기술인력 공급이 필요한데 급격한 정책이동으로 시장 왜곡과 인재 시스템에 충격을 주고 있다. 적응시간이 필요한데 모든 정책이 급격하다.



- 기업에서는 대학이 산업 현장에 쓸 인재를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 특정 주제에 대해 학교 지도인력과 기업이 합작해 교육코스·자격증 같은 것을 만드는 등 지식과 특기를 유지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다. 한국이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3차 혁명에 잘 적응한 것은 필요한 인프라인 초고속 인터넷망을 잘 구축해서다. 4차 혁명시대는 디지털 교육, 디지털 헬스, 디지털 금융 시스템 등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는데 아무런 개념이나 준비가 없다. 재정을 이런 데 써야 한다.  



- 말씀대로 재정을 어떻게 잘 쓰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 단기적으로는 소부장 산업이겠지만 멀리는 성장 산업을 만들어낼 디지털 인프라가 핵심이다. 디지털 인프라만 잘해도 한국 경제가 점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지금 같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재정 투입은 몇 년 후 부담으로 올 것이다.  



- 결국 성장의 힘, 즉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할 텐데. 


△ 잠재성장률은 최근 1년마다 0.2%씩 떨어지고 있다. 고령화에다 투자가 안 되는 탓이다. 같은 노동이라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다. 미국·프랑스는 잠재성장률이 오히려 올라갔다. 프랑스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키웠고 미국은 법인세를 떨어뜨려 기업 투자를 유도했다. 혁신 시스템을 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가면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



-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민간의 활력을 키워야 하는데. 


△ 대기업은 연관사업으로 키우지만 스타트업들의 경우 좋은 아이디어가 많은데 키우려다 좌절하고 사장되는 것이 안타깝다. 퍼스트 무버가 퍼스트 루저가 되는 상황이다. 정부 돈을 퍼부으니 벤처 창업이 늘기는 느는데 오래 버티느냐가 문제다.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넘는 기업이 많지 않다. 창업 후 상장까지 오래 걸려 기존 기업에 인수합병(M&A)되는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기업공개(IPO) 전 빨리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할 옵션이다. 우리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이 인수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법적인 부분도 장애요인이다. 대기업에 취직을 안 해도 회사를 키워 팔아 대박 난 사례가 많이 나오면 자연히 창업 분위기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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