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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한민국 정부는 가난하지 않다
- 주상영 위원 -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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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한민국 정부는 가난하지 않다    원문보기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출처 : 한겨레(2019. 05. 23)


지난 16일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국가채무의 마지노선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인가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과연 국가채무 규모에 대한 황금률이 있는 것일까. 유럽에서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유로화가 만들어질 때 회원국 재정적자는 지디피 대비 3% 미만, 국가채무는 지디피의 60% 미만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명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숫자를 뒷받침할 경제논리가 충분히 설명된 적은 없다.


국가채무의 임계치에 대하여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2010년에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연구는 90%를 언급했고, 이듬해 국제결제은행(BIS)에서는 85% 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2012년에 국제통화기금은 경제성과에 해를 끼치는 특정 수준의 임계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2년 말 기준으로 국가채무비율은 32.2%였다. 그로부터 4년 뒤에 이 비율은 6%포인트나 올라가 38.2%가 됐는데 그 후로 3년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경제성장률이 2%대 후반으로 내려앉았는데, 만약 재정의 역할이 없었으면 성장률은 더 내려갔을 것이다. 실제로 2015년에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기획재정부는 어려운 경제여건하에서 재정마저 경제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안 했다면 상황이 더 나빠졌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규모가 큰지 작은지 한번 따져보자. 국가채무가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로 구분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책 당국자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아는 체 안 하는 것인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적자성 채무는 대응자산이 없어서 국민의 세금 등으로 상환해야 하는 채무이지만, 금융성 채무는 대응자산이 존재하는 채무이다. 우리가 지디피에 대비해서 얼마라고 말할 때의 국가채무에는 금융성 채무가 40% 정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원화를 조달하고 그 돈으로 달러를 매입했다면 정부가 발행한 채권 금액만큼 국가채무가 늘어난 것으로 기록되지만, 매입한 달러라는 대응자산을 동시에 소유하는 것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채무는 아니다. 대응자산이 있기 때문에 국민이 갚아야 할 순채무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우리 정부는 환율 안정 목적으로 오래전부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해왔는데, 외평채와 같은 금융성 부채를 빼고 계산하면 국가채무비율은 24% 정도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빚에 쪼들리는 가난한 정부가 아니다. 채권 발행액 위주의 국가채무비율 개념에서 벗어나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국민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자. 2017년 한국 정부의 순자산(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금액)은 3821조원이다. 이는 지디피의 220%를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로서, 인구 5천만명 이상으로 1인당 소득 3만달러가 넘는 30-50 클럽 국가에서 이 비율은 0에 가까울 정도로 작다. 정부 소유 자산이 대부분 토지와 건물이라고 하지만, 금융자산에서 금융부채를 뺀 순금융자산만 따져도 624조원에 달한다. 한국은행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획재정부의 국유재산 집계액도 1075조원이나 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연도별 수입과 지출이라는 좁은 틀에서 재정정책을 구상해왔다. 이제부터는 발상을 전환하여 국민대차대조표의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틀에서 볼 때 중장기 재정전망에 위협요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전체의 순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라살림과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국고에서 마구 퍼다 쓸까봐 걱정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돈을 더 내든지 저리로 빌려주든지 해야지 큰소리로 야단만 친다고 될까.


우리는 그동안 박정희의 성장 신화, 1990년대 초부터 유행한 세계화와 무한경쟁 개념에 적극 편승해서 살아왔다. 성장 동력을 그럭저럭 유지하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사회는 저출산을 선택했다. 그 대가는 저성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좁은 틀에서의 국가재정 건전성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마치 공자님 말씀 같은 것이어서 뭐라고 반박하기 쉽지 않지만, 침체는 앞당겨지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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