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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제 규범 파괴하는 ‘무역의 정치화’
- 송의영 위원 -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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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국제 규범 파괴하는 ‘무역의 정치화’    원문보기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 출처 : 경향신문(2019. 07.02)


미래 예측은 언제나 난감한 일이지만 요즘 들어 세계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경제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던 경제학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세계 경제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경제의 울타리를 벗어나 정치에 따라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헌법적 관행과 전후 형성된 세계 무역 질서의 경계를 넘어서서 무역정책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었던 정경 분리의 원칙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경제정책의 정치화는 경제정책이 포퓰리즘에 포획될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합리와 타협이라는 균형추 대신 보복의 역학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더구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트럼프식의 정치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일관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 자체가 불확실하다. 많은 분석가들은 중국 경제를 선진국 경제에서 분리해 중국의 산업 고도화를 지연시킴으로써 미국의 기술과 군사력 패권을 연장하는 것이 트럼프 보호무역의 궁극적 목표라는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최근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미국의 의회와 정책가 사이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들이 향후 미·중관계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최근 트럼프는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중국의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를 미국과 우방의 경제에서 도려내기 위해 세계무역기구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고 여러 우방에 주권 침해에 가까운 외교적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 한 가지 목표를 일관적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트럼프의 가장 분명한 목표는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트럼프의 핵심 정치 기반인 민족주의적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중국이 아니라 우방에 칼끝을 겨누는 철강 관세를 부과했고, 멕시코가 이민 제한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황당한 위협을 행사하는 중이며, 한국을 포함한 주요 우방의 제조업에 타격을 줄 자동차 관세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또한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노동자 계층은 세계 패권 전쟁에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러스트 벨트 복원과 호황으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 때리기는 소비자 물가 급등, 주가 폭락, 경기 급랭을 피하는 수준에서 하는 게 정치적으로 현명할 것이다.


또한 미국이 중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 인하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중국의 보조금 인하, 강제 기술이전 금지, 지적재산권 강화는 미국 전통적 보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다국적기업이 강력히 원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은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 시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으며 트럼프의 거친 행보를 통하여 중국 시장이 자신들이 놀기에 좀 더 ‘평평한 경기장’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트럼프가 이 세 세력 중 누구의 이익을 대변할지 미리 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주가, 경기, 여론, 상원의원, 기부자들의 반응에 따라 어떤 루트가 권력 유지에 가장 유리할 것인지 수시로 다시 계산할 것이다. 며칠 전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G20 정상회담에서 발생한 미·중 무역전쟁 휴전과 협상 재개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 국제 규범을 파괴하는 무역의 정치화는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중국의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제한하고,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점유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다. 또 사드 설치에 대하여 여러 방식으로 한국에 경제 보복을 하였다. 트럼프는 안보를 명분으로 내걸어 정경 합일의 방식을 더욱 명시화하고 세계화하여 세계 무역 질서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이제 이러한 기운은 이웃나라에 전염되어 일본 정부가 미국의 화웨이 금수조치를 그대로 흉내 내어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기업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부품 수출을 금지하는 카드를 만지고 있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세계는 중국을 세계 무역 질서에 편입시킴으로써 중국이 미국처럼 되기를 바랐는데,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이 또 다른 중국이 되어 버린 세계에 살게 됐다고 풍자한 바 있다. 한국은 이제 세 개의 중국 사이에서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소국 경제를 꾸려나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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