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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0-50 클럽 국가들이 앞서간 길
- 주상영 위원 -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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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0-50 클럽 국가들이 앞서간 길    원문보기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 출처 : 한겨레(2019. 09.19)

우리나라는 지난해 1인당 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고 30-50 클럽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인구 5천만명이 넘으면서 우리보다 앞서 1인당 소득 3만달러를 넘은 곳은 여섯 나라뿐이다. 나라마다 물가상승률이 다르기 때문에 명목소득이 아닌 실질소득을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는데, 최근 연도를 기준으로 소득을 조정해보면, 미국은 1970년대 말에, 독일·일본·프랑스는 1990년대 초반에, 영국과 이탈리아는 1990년대 중반에 3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보다 25년 내지 40년 앞서간 국가들이 그 후로 어떤 성장 경로를 걸어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1인당 소득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도 같지만, 나라마다 어떤 다른 특성을 보이는지 알아두면 우리의 미래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라마다 경제규모와 인구증가율이 다르기 때문에 1인당 소득 증가율과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기준으로 평가해볼 때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인 국가는 미국이다. 순위를 정확히 매기기 어렵지만, 대체로 독일과 영국이 공동 2위 정도의 성과를, 프랑스와 일본이 공동 4위 정도의 성과를 보였으며, 이탈리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필자의 관심을 끄는 국가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다. 독일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이고, 이탈리아는 서구에 속한 나라지만 우리처럼 가족주의와 연고주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차례대로 핵심적인 특징을 짚어보기로 하자.

 

독일의 경우 막연하게 짐작했던 것보다는 경제성장률이 높지 않았다.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후유증도 있었겠지만, 지난 30년간 1인당 연간 성장률은 1.2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경쟁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월등히 높지는 않다.

 

반면에 장기침체 국가로 알려진 일본의 성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지난 30년 동안 1인당 소득증가율은 연간 0.9%로서 독일에는 못 미치지만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간 1% 초반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독일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다른 국가와 달리 3만달러 소득 달성을 기점으로 성장률이 급락한 특징이 있는데, 거품 붕괴와 인구 감소, 고령화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30-50 클럽 가입 시점을 전후하여 3% 안팎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기록한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미 2010년대 들어 증가율이 연간 1.7%로 둔화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아서 생산성 증가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독일과 일본의 사례로 보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탈리아의 성과는 들여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나쁘다. 미국이 1인당 실질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후 연평균 성장률 1.7%를 유지한 반면, 이탈리아는 1990년대 중반에 3만달러에 도달한 후 20여년 동안 연평균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간 0.04%에 불과한데, 사실상 생산성 증가가 멈춘 셈이다. 여기에 ‘이탈리아병’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미국 시카고 경영대 교수이자 이탈리아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루이지 징갈레스는 이탈리아병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정보통신기술을 경제활동 전반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특유의 가족주의와 연고주의이다. 징갈레스에 따르면 정부기구가 비효율적이라거나 고용보호 관련 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다거나 하는 요인은 부차적이다. 민간기업에서조차 능력주의·성과주의보다 가족주의·연고주의가 우선하는 풍토가 이탈리아병의 주된 요인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섯 나라는 비슷한 시기인 1990년대 초중반에 30-50 클럽에 가입했다. 그 후로 20여년이 흘렀고,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이에도 국가별 성과에는 적잖은 차이가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참으로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여기까지 왔다는 점이다. 의지와 함께 인내심이 요구되는 대전환기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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