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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공부문 민간위탁과 효율성 착시
- 이주희 위원 -

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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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    원문보기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출처 : 경향신문(2019. 10. 13)


1795년 스핀햄랜드법은 당시 어려웠던 영국 농촌 노동자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했다. 문제는 일종의 임금보조제도였던 스핀햄랜드 체제하에서 영국 농촌이 파운드화의 가치를 나폴레옹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키고자 했던 잘못된 거시경제정책의 탓으로 극심한 실업과 빈곤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1834년의 신구빈법은 이런 근본적 인과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스핀햄랜드에 농촌 피폐화의 누명을 씌웠고 그 이후 영국은 수 세대에 걸쳐 국가의 빈민구제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키우게 됐다. 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 빈민을 위한 국가의 개입은 없어야 한다는 타운센드와 맬서스의 왜곡된 논증이 이러한 해석을 더욱 공고하게 뒷받침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3단계인 민간위탁의 정책방향에서 스핀햄랜드의 착시가 되풀이됨을 느낀다. 1, 2단계 전환이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면, 3단계 민간위탁에선 전환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개별 기관이 자율적으로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정부의 방임적 입장 때문인데, 이는 지난 20여년간 노동시장 유연화를 정책의 최대 목표로 삼고 축적한 정책 패러다임이 상당부분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외환위기 후 공공부문에서 급증한 민간위탁도 신자유주의하에서 부활한 시장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민간위탁이 더 효율적이라는 건 빈곤에 대한 구제로 빈곤이 더 악화됐다는 스핀햄랜드에 대한 악의적 서사만큼 심각한 오류일 수 있다.

 

민간위탁이 효율적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공공기관이 확보하기 어려운 민간의 전문성 활용이다. 하지만 대다수 업무가 전문성과 무관한 일반적 공공업무로, 사실상의 노무 제공에 불과한 위장된 용역 형태도 종종 발견된다. 인건비 등 비용 절감과 관련된 효율성 역시 민간위탁 기업들의 높은 간접비, 임금 횡령이나 감가상각비 허위기재, 대행료 과다 청구 등으로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공공서비스 공급에 있어 시장의 경쟁 요인을 도입하겠다는 취지도 실제로는 특정 기업이 독식하는 관행과 퇴직 공무원이 선정된 업체의 임원으로 가는 등의 비리로 인해 무력화된다. 결국 민간위탁은 세금을 내고도 공공성 높은 서비스를 못 받는 국민과 직영노동자와 유사 업무를 하면서도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감내해야 하는 민간위탁 노동자 모두에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관리 업무 감소와 문제 발생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일부 공무원에게는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민영화, 외주화, 시장화에 기반한 신공공관리론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 지 오래다. 효율성과 유연성에만 매몰되었던 민간위탁 정책의 전면적 기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지자체 업무가 중앙정부의 예산으로 민간위탁되고 있는 현실에서 획일적인 기준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규제의 방안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예산 지원을 무기로 인건비를 묶어둘 수 있었다면, 차등적 예산 배정을 통해 공영 전환을 독려하거나 인소싱 목표제를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본질상 정부의 고유한 업무는 외부 위탁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민간위탁으로 인한 비용 감소나 서비스의 질 제고가 불분명한 업무의 공영 전환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시장의 효율성 착시에 눈멀어 무분별한 민간위탁의 관행이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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