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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자연선택의 함정에 빠진 자동차 산업
- 김기찬 위원 -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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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연선택의 함정에 빠진 자동차산업


김기찬 카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 출처 : 서울신문 (2018. 11. 27)


생존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현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진화가 중단된 유기체는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이다. 변화하는 환경만 욕하다가 자신이 변하지 않는 종은 결국 자연의 선택을 받지 못해 사라진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자연선택 함정에 빠져 있다. 경영 전략의 대가들은 이를 현재의 저주 혹은 활동적 관성이라 부른다. 2013년 이후 한국 자동차산업은 진화가 중단돼 있다. 자동차산업의 노동자도, 경영자도 2013년 이전 잘나가던 옛날을 생각하면서 ‘이대로 쭉’을 외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지난 5년여간 성장하는 차종 개발과 성장하는 시장 개척에 실패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 진화의 현주소를 가장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GM 본사에 있다. GM은 자동차 생산의 78%를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 공장의 원가를 비교해 어느 공장에서 생산할지를 결정한다. 2013년 GM은 군산공장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판매하던 크루즈와 올랜도를 당시 독일의 자회사였던 오펠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이는 한국에서 소형 자동차 생산은 더이상 국제 경쟁력이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군산공장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던 반제품(KD) 물량은 이미 GM상하이에 넘겨준 지 오래다.

군산공장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2013년 이후 지난 5년간의 시간도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기보다는 모두 안락한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군산공장이 폐쇄될 때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GM 본사에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GM이 2월 13일 군산공장 철수를 결정·통보하기 전날까지도 군산에서는 GM이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정치인들과 지방자치단체 기관들의 의지와 희망의 발언만 계속됐다.

GM의 리트머스 시험지는 계속 움직이고 있다. GM 본사는 생산과 별도로 연구개발(R&D) 법인 설립을 원하고 있다.
명분은 R&D 강화다. 실제로 GM 본사는 한국의 연구개발 부문을 필요로 하고 있다. 2016년까지 전 세계 GM의 차종 개발은 미국, 한국, 오펠연구센터에서 담당해 왔으나 2016년 오펠을 푸조에 매각한 이후 GM의 연구개발 조직이 부족해지고 있다. GM은 연구개발 역량, 특히 내연차 연구개발 조직의 보강이 필요하다. 그래서 R&D 센터를 GM 본사의 직계 회사로 키우고 싶어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의 연구개발력은 아직 강하고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잘한 것을 칭찬하는 것’은 곧 ‘못하는 것을 물 먹이는 것’과 같다. 소형차 창원공장이 지속적인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다. 게다가 파견직의 정규직화 문제가 남아 있다. GM 창원공장의 파견 근로자 비율은 50% 이상이다. GM은 창원공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시간문제로 보인다. 참고로 일본 자동차산업에도 파견 근로자 비율이 40%나 된다.

지금도 자동차산업의 많은 관계자들은 문제 제기와 불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드 후유증, 노사 문제, 미·중 통상분쟁…. 그러면 이러한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 자동차는 해외에서 잘 팔릴 수 있을까?
불평만으로는 부족하다. 한·미 통상 문제에 따라 그다음 영향을 받을 곳은 광주 기아차 공장이다. 자동차산업은 노사 문제에 너무 매몰돼 있다. 전략이 부족하다.

중국 베이징기차는 이제 현대차보다 벤츠를 파트너로 하고 싶어 하고, 일본은 기업 가치가 떨어진 현대차 지분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들리고, 미국은 리콜을 만지막거리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에는 전략을 연구하는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
그것마저도 단기적인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의존하는 실정이다. 집토끼와 산토끼는 한집에서 살 수 없다. 분사 전략도 필요하다.

구글의 지주회사 이름이 알파벳인 이유, 알리바바의 관계 회사가 520개를 넘은 이유가 있다. 전략이 없는 곳에서 산업은 진화하기 어렵다. 산업의 성장만큼 이론적 해석이 필요한데 전략 연구가를 키우지 못했다. 수년간 노사 전문가만 키우고 이들이 컨설팅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산업은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더욱 꼬여 가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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